한국 무슬림이 바라본 “이슬람의 13교리” ()

카람 김은수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 교리"라는 파일이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파일이 담고 있는 주장들이 정말 사실일까요? 한국인 무슬림 카람 김은수는 무슬림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

 한국 무슬림이 바라본 “이슬람의 13교리”

작성자 : 카람 김은수[1]

이슬람을 소개하는 자료 중에서 요즘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아니 매우 유명한 자료가 있습니다.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교리”가 바로 그것인데요. 해당 자료는 다음과 같이 생겼습니다, 아마 한번씩은 보셨을 거에요.

건전한 이성을 가진 분이라면, ‘신도에게 이러한 무시무시한 가르침을 주는 종교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심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 분들은 이 파일에 제시된 여러 주장들을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이슬람포비아(이슬람 공포증)는 이 파일로 인해 더욱 득세하고 있는 실정이구요. 과연 저 주장들이 사실일까요?

이슬람은 하나님의 마지막 종교입니다. 이슬람의 성서는 꾸란으로서, 꾸란은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성서입니다. 한국인 무슬림으로서 저는 여러분들께 위 주장들(이하 13교리)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하나 하나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사춘기 시작 안 한 여자아이를 강간, 결혼, 그리고 이혼해도 된다 - 코란 65:4

자료에서 주장하는 결혼과 강간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관해 글을 진행하여 보겠습니다.

첫째 : 어린 나이의 결혼

해당 자료에 언급된 꾸란 제 65장 4절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최영길 역[2]) : “생리 기간이 끝나버린 여성이라도 너희가 의심할 경우는 그녀들을 위해 정해진 기간은 석달이며 생리에 이르지 아니한 여성도 마찬가지라 또한 임신한 여성의 기간은 출산할 때까지로 하나님을 두려워 한자 하나님은 그의 일을 편하게 하여 주시니라” 이 꾸란 구절은, 배우자간의 갈등으로 인해 이혼이 발생한 경우 무슬림이 지켜야 할 ‘지정 기간’ (아랍어로는 잇다 العدة )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샤리아(이슬람법)에 의하면 기존 남편과의 이혼 후에 무슬림 여성이 새로운 남성과 결혼을 하고자 할 경우, 그녀는 반드시 지정 기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꾸란 구절에는 ‘생리에 이르지 아니한 여성’은 석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생리를 하지 않는 여성이 기존의 남편과 이혼했을 경우 삼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성이 생리를 하지 않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해당 여성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고 다시 말하면 생리할 나이에 도달하지 않은 여성 역시 혼인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이슬람에서는 조혼(早婚)이 허락된다는 뜻입니다.

조혼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조혼은 한국 사회에서도 자주 있었던 풍습입니다. 고려 시대 후기에는 원나라가 공녀를 요구했기 때문에 조혼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한국문화사>에 따르면 18-19세기에는 15세 이하의 나이에 결혼한 비율이 24.7%였으며, 20세기 초 그 비율은 24.6%였습니다(vol.27, p.230). 우리 조상들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대에 결혼을 하셨던 것입니다. 동일한 자료에 의하면, 1743년(영조 19) 신하 조현명은 가난하고 궁핍하여 때를 넘기고도 시집 장가를 가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자고 영조에게 건의하였는데, 그 대상은 남자 29세, 여자는 24세 이상이었습니다(vol.27, p. 228-229) 허걱! 남자 29세, 여자 24세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빠른 나이에 결혼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때를 넘긴’ 불쌍한(?) 사람들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나이에 결혼한 것이 조혼이며, 몇 살에 결혼을 해야 ‘적당한’ 나이의 결혼인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뀐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시대 상황과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현대의 관점만으로 그들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우리말에는 ‘감정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감정아이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월경을 하지 않고 밴 아이. 곧 첫 배란 때 수정되어 잉태된 아이를 이른다.” 즉, 월경을 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하여 꾸준히 부부생활을 해오다가, 생애 첫 배란 때 수정이 성공하여 출산한 아이가 ‘감정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 사이에 조혼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나이가 언급된 자료들도 있습니다. <춘향전>의 두 주인공 춘향이와 몽룡이는 모두 16살, 즉 중학교 3학년입니다. 이들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부적절한 나이에’ 결혼한 것입니다.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 줄리엣은 당시 14살 생일 파티를 열었고, 줄리엣의 엄마는 그녀에게 ‘내가 네 나이 때 널 가졌다’고 말합니다. 즉, 14살의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줄리엣은 그 당시 사회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미 결혼을 했어야 할 나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줄리엣은 14살의 ‘늦은’ 나이에 로미오와 결혼을 합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 이들 모두는 부적절한 나이에 조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우리의 기준에 입각하여 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춘향이와 로미오를 비판할 수 있을까요? 세종대왕은 1397년생이고, 1408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만으로 11살에 결혼했다는 얘기고, 아내 소헌왕후는 당시 만 13살이었습니다. 조혼을 했다는 이유로 세종대왕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비판할 수 없으며, 비판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메카에서 꾸란이 계시될 당시, 유일신 사상 이슬람을 거부하던 많은 우상숭배자들은 무슬림들을 비판하였습니다. 꼬투리 잡힐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잡아 그들을 배격하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슬람의 조혼 규정은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 당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조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뜻이지요. 이슬람은 조혼을 의무사항으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슬람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모든 인류를 위한 종교이기에, 특정 시대나 특정 지역에서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조혼의 사회적 수요를 고려하여, 특정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는 조혼이 허락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샤리아(이슬람법)에 따르면, 여성의 의사에 반한 결혼은 무효이며,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자 하는 여성이 판단이 성숙치 못할 수 있으므로, 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결혼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안전장치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무슬림은 언제 결혼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슬람에서 조혼을 허락하고 있으니 현대 한국 무슬림도 조혼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지막 성서인 꾸란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그녀들(아내들)과 훌륭한 삶을 살라” (꾸란 제 4장 17절) (김은수 역) 여기서 ‘훌륭한’으로 번역된 아랍어 표현은 ‘마으루프’(معروف)입니다. ‘마으루프’의 언어적 뜻은 ‘알려진’이라는 뜻인데요, 유명한 아랍어 사전 <리사눌 아랍>에 따르면 ‘누가 보아도 훌륭하고 문제가 없어 보이는 모든 것’이 마으루프입니다(<리사눌 아랍>, vol.9, p.239). 이슬람 학자들의 꾸란 주석(타프시르)에 따르면 이 꾸란 구절에 담긴 의미는, ‘무슬림 남편과 아내는 그 당시 시대와 장소에 비추어 보았을 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함을 하나님께서 의무화하신 것’입니다. (<타프시르 앗-사으디>, p.172)

만약, 한국 무슬림 남성이 어린 여성과 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아내는 정규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기 힘들 가능성이 다분하며, 현대 한국 사회와의 여러 마찰 및 주위 사람들의 비난으로 힘들어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 둘은 꾸란에서 의무화된 ‘훌륭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조혼은 의무 사항이 아니지만,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은 의무 사항입니다. 따라서 훌륭한 삶은 조혼보다 우선시되며, 만약 조혼이 훌륭한 삶을 영위함에 방해가 될 경우에 조혼은 금지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이슬람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 한국 무슬림에게 조혼을 권장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적절한 혼인 연령이 언제인가는 시대와 지역 및 문화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현대 한국인의 문화를 절대적 평가 기준으로 삼아서 여러 시대에 걸쳐 발견되는 타지역의 조혼 문화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슬람은 훌륭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무슬림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문화적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혼인 연령을 결정해야 합니다.

둘째 : 강간에 관한 이슬람의 규정

이슬람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퍼뜨리기 위해 혈안이 된 일부 세력들이 있습니다(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더라도 저들이 누군지는 아실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들이 단골 메뉴로 써 먹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강간입니다. 인터넷에서는 ‘무슬림은 집단 강간을 즐긴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보이며, ‘무슬림 난민을 받아주면 강간 범죄 비율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며, 인용된 13교리 자료는 꾸란이 어린 아이의 강간을 허락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양인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어떤 시대 그 어떤 지역의 그 어떤 종교도 강간을 명령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이슬람이 강간을 허락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들은 대체 머릿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이슬람은 강간이라는 중범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만약 유부남이 강간을 범했다면 그는 투석형에 처해지며, 만약 강간범이 미혼이라면 그는 100대의 태형을 형벌로 받습니다. 강간범에 대한 이러한 이슬람의 형벌은 이슬람 학자들 사이의 전원일치(이즈마으) 의견입니다. 이슬람의 유명한 학자이자 법학가인 ‘이븐 압둘 바르’(1071년 사망)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강간범에 대한 이슬람 학자들의 만장일치 의견에 따르면, 범죄를 확증할 증거가 확보되었을 경우 혹은 범죄자가 자백을 한 경우 그에게는 ‘지정 형벌’(핫드 الحد , 투석형 혹은 태형)이 집행되며, 증거가 부족할 경우에는 그에게 ‘일반 형벌’(타으지르, التعزير 판사의 재량으로 결정되는 형벌)이 내려진다.” (<알-이스티드카르>, vol.7, p.146)

이슬람은 강간을 명령하기는 커녕, 강간범에 대해 그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13교리가 주장하는 ‘사춘기 시작 안 한 여자아이를 강간해도 된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여기서 사족을 좀 달자면, 만약 한국 사회에서 강간에 관한 이슬람의 형벌이 집행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부남이 강간을 저질렀음이 확실한 증거로 입증되어 강간범에게 사형이 집행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 사회의 강간 범죄율이 급격히 하락하리라 확신합니다! 강간범에게 고작 징역 4-5년의 처벌을 집행(강간범의 평균 형량 : 4년 11개월, 여성가족부, 2016년 기준)하는 한국의 실정입니다. 강간을 결심하는 사람 중에는 ‘걸려도 콩밥 몇 년 먹고 다시 나오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이 같은 가벼운 처벌을 악용하여 출소 후에도 동일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분명 존재합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이러한 현실에 분개하고 있으며, 저 역시 그들과 함께 분노하는 일인입니다. 한국 강간범에 대한 처벌이 사형이었다면 강간범들은 자신의 목숨이 두려워서라도 섣불리 범죄를 결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회에 무엇이 좋은 것인지 인간보다 더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분께서는 강간이라는 범죄에 대해 이슬람의 형벌처럼 엄격하고 강력한 처벌을 규정하신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우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찬미를 드립니다.

 2. 다른 사람을 성 노예와 노동 노예로 만들어도 된다 - 코란 4:3, 4:24, 5:89, 33:50, 58:3, 70:30

13교리가 근거로 삼고 있는 꾸란 구절은 정말로 저러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꾸란 구절을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꾸란 제 4장 3절의 한국어 번역입니다 :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정하게 대처하여 준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번 또는 세번 또는 네번도 좋으니라 그러나 그녀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이거늘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보다 적합한 것이라” 번역에서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은 노예를 뜻합니다. 즉, 이 꾸란 구절은 노예와의 결혼이 허락됨을 알리고 있을 뿐, 13교리가 주장하는 ‘다른 사람을 성 노예와 노동 노예로 만들어도 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꾸란 4장 24절의 한국어 번역입니다 : “이미 결혼한 여성과도 금지되나 너희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것은 제외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이외에는 너희를 위해 허락이 되었으며 간음이 아닌 합법적 결혼을 원할 경우 지참금을 지불해야 되나니 너희가 그들과 결혼함으로써 욕망을 추구했다면 그녀들에게 지참금을 줄 것이라 그 의무가 행해진 후에는 쌍방의 합의에 의한 것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죄악이 아니거늘 실로 하나님은 만사형통 하심이라” 이전의 꾸란 구절에서는 결혼할 수 없는 여성들(어머니, 딸 등등)이 열거됩니다. 이 구절은, 이미 결혼하여 남편이 있는 여성과의 결혼이 금지됨을 언급한 후, 너희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것, 즉 노예와의 결혼은 허락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는 보시다시피 노예와의 결혼이 허용되는 내용은 언급되어 있으나, ‘다른 사람을 성 노예와 노동 노예로 만들어도 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꾸란 5장 89절의 한국어 번역입니다 : “하나님은 너희 언약보다는 너희의 의도와 마음을 계산하시니라 그의 속죄로써 열명의 불쌍한 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라 이는 너희 가족들이 먹는 음식이라 또한 그들에게 입을 옷을 주고 노예를 해방시켜 주는 것도 되나니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삼일간 단식을 하라 그것이 내가 언약한 속죄이니라 그러나 너희 언약은 지켜야 하느니 이것이 너희에게 계시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너희는 감사하라” 이 꾸란 구절은, 무슬림이 하나님께 맹세한 후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할 경우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 맹세코! 오늘 하나님을 위해 100만원을 기부금으로 내겠다’ 라고 해놓고선 오늘 내로 기부금을 내지 않으면 하나님을 걸고 한 맹세를 어긴 것이기에 무슬림은 실천하지 못한 맹세에 대한 속죄를 해야 합니다. 이 꾸란 구절에 의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속죄가 가능하며, 그 중의 하나가 노예 해방입니다. 노예 해방을 적극 권장하는 이슬람의 모습 역시 이 꾸란 구절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살면서 맹세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터인데 그 때마다 이슬람은, 노예 해방을 통하여 무슬림에게 지키지 못한 맹세를 속죄하라 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꾸란 33장 50절의 한국어 번역입니다 : “예언자여 실로 하나님이 그대에게 허용하였나니 그대가 이미 지참금을 지불한 부인들 하나님께서 전쟁의 포로로써 그대에게 부여한 자들로 그대의 오른손이 소유하고 있는 이들과 삼촌의 딸들과 고모의 딸들과 외삼촌의 딸 들과 이주하여 온 외숙모의 딸들과 예언자에게 스스로를 의탁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진 여성들과 예언자가 결혼하고자 원할 경우 그대에게는 허용되나 다른 믿는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은 그들의 부인들과 그들 오른손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관하여 믿는 자들에게 의무화한 것도 알고 있노라 이는 그대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함이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이 꾸란 구절을 통해 그분의 사도 무함마드에게 혼인의 대상자로 허락된 여성이 누구인지 설명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는 사도로서의 특별한 위치를 지녔기에 무함마드에게’만’ 허락된 여성이 있으며 (지참금을 받지 않고도 사도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 여성, 위 꾸란 구절에서는 ‘예언자에게 스스로를 의탁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진 여성들’로 번역되었습니다), 일반 무슬림에게 부과되는 결혼을 위한 전제 조건들이 사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사실 (‘믿는 자들에게 의무화한 것도 알고 있노라 이는 그대에게 어려움이 없도록 함이니’라고 번역된 부분) 등이 이 구절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사도에게 아내로서 허락되었던 또 다른 종류의 여성은 전쟁 포로였습니다. ‘싸피야’와 ‘주하이리야’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타프시르 이븐 카씨르>, vol.6, p.442). 사도께서는 ‘싸피야’와 ‘주하이리야’를 해방시켰고, 후에 이 두 분은 사도와 결혼하게 되며 사도의 아내로서 누릴 수 있는 여러 명예를 받게 됩니다. 전쟁 포로에서 하나님의 사도의 아내로…어찌 보면 커다란 신분 상승이 이루어진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꾸란 58장 3절의 한국어 번역입니다 : “그러나 지하르 형태로 아내와 이혼한 자가 그들이 말한 것을 취소할 때 그들은 그녀와 동침하기 전에 한명의 노예를 해방시키라 너희가 충고를 들었거늘 실로 하나님은 너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니라” 이 꾸란 구절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을 경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당시 아랍인들은 배우자끼리 다툼이 있을 때 남편이 아내에게 화를 내며 ‘당신은 이제 내 어머니의 등과도 같소’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벌거벗은 등을 볼 수 없듯이, 이제 자신은 아내와는 결코 성관계를 가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맹세를 ‘디하르’ (아랍어로는 الظهار, 번역에서는 ‘지하르’)라고 하는데요, 하나님께서는 무슬림이 이 맹세를 취소하고 싶은 경우, 즉 아내에게 다가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선 그 맹세를 취소하고 싶을 경우, 한 명의 노예를 해방시킬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꾸란 5장 89절의 경우처럼, 이슬람이 노예 해방을 적극 권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꾸란 70장 30절의 한국어 번역입니다(김은수 역) : “그러나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자는 예외로서, 그들은 비난받지 않노라” 위의 여러 구절들에서 이미 언급드렸듯이 ‘그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것’은 노예를 뜻합니다. 바로 이전 꾸란 구절(70장 22-29절)은 꾸준히 예배 드리는 신앙인들의 속성을 열거하고 있는데요, 29절에서 그들은 순결을 지키는 자들이라 묘사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어지는 이 구절을 통해 아내와 노예는 예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아내와 노예와는 결혼 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아내와 노예의 차이점은, 일반인인 아내가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그녀의 신분에 관해 달라지는 것은 없는 반면, 노예가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그녀는 노예 신분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 이미 여러 번 설명드린 바대로 - 이슬람은 노예 해방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을 열어두어 노예 해방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슬람은 왜 노예제를 ‘즉각적으로’ 폐지하지않았나요?” 노예제는 이슬람 이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이미 사회에 뿌리깊이 정착되어 있는 노예제를 일시에 폐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왜 쉽지 않냐구요? 이해를 돕기 위해 토지 국유화 문제와 비교하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투기 세력에 의해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것을 보고 토지 국유화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한국민 모두가 이 국유화에 동의할까요? 토지 국유화를 통해 실수요자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재편되고 집값이 안정을 찾는 등 여러 장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국유화에 동의하시는 분도 계시고 반대하시는 분도 물론 계실 것입니다. 국민의 100% 모두가 동의해도 추진하기 어려운 토지 국유화인데, 반대 의견을 가지신 분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책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무리하게 정책을 집행하다가는 커다란 후폭풍에 부닥칠 것입니다. 노예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이슬람이 막 전파되기 시작한 당시의 아라비아 반도에는, 노예제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노예 해방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이슬람을 반대하는 기존 세력들은 노예 해방에 결코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이 일방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선포한다면, 이슬람을 비난하는 세력들의 물리적 위협은 더욱 거세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노예제 폐지는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토지 국유화의 가장 첨예한 이슈는 사유재산권 문제입니다. 토지 소유주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토지를 구매한 자들로서 해당 토지에 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권리를 가진 분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가진 토지를 포기하고 그것을 정부에 귀속시키라니요?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다. 누군가는 "왜 갑자기 공산주의?!" 라고 외칠 것입니다. 노예제 폐지도 마찬가지 이슈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예를 소유한 자들은 공짜로 노예를 확보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재산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여 노예를 구매한 것입니다. 그렇게 큰 돈을 들여 노예를 확보했는데 갑자기 노예를 포기하리나요? 절대 포기 안 합니다. 만약, 노예를 포기하는 동시에 노예의 시장값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을 보상해주겠다는 보장이 있다면 노예 주인들이 이에 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노예 주인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해주나요? 실체가 모호합니다. 아무도 보상 안 해줍니다, 아니 못해 줍니다. 노예 주인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상금 총액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인해 급격한 토지 국유화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모든 국민이 토지 국유화에 찬성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남은 절차는 정부가 기존의 모든 토지를 사들이는 절차입니다. 그러려면 토지 소유주에게 토지 실거래 가격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할 텐데, 정부는 이를 위해 무려 6,981조원(2016년 대한민국 토지자산 가격, <2016년 국민대차대조표>, 한국은행/통계청, p.10)을 준비해야 합니다. 6,981’억’원이 아닙니다. 6,981’조’원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재정을 정부가 하루 아침에 준비 가능한가요? 불가능합니다. 노예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예제를 폐지하려면 현존하는 수많은 노예들의 시장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을 노예 소유주들에 보상해줘야 하는데, 보상의 주체도 모호할 뿐더러 그러한 엄청난 금액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노예제가 폐지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노예제가 폐지되었다는 말은, 노예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노예 소유주는 노예에게 먹을 음식과 입을 옷과 거주지를 제공했습니다. 노예는 당장 특별한 일거리가 없더라도 소유주가 제공해주는 이러한 편의에 힘입어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노예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이전에 노예였던 자신은 이제 일반인 신분입니다. 기뻐하는 것도 잠시, 해방 노예는 이제 자신이 백수임을 발견합니다. 직업이 없습니다. 돈 벌 방법이 막막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막노동 뿐인데, 막노동 수요는 한정되어 있고 자신과 유사한 스펙을 가진 일 잘하는 해방 노예는 시장에 넘쳐 납니다. 슬하에 딸린 아내와 자식들은 자신만 바라보며 손가락을 빨고 있는데, 당장 오늘 먹을 거리를 구할 수 없어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 주인님 밑에서 일할 때가 좋았는데”라는 한탄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이슬람은 ‘노예 해방 권장’이라는 현실적인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급격한 변화가 아닌 점진적 발전을 지향하면서 노예가 ‘단계적으로’ 사라지도록 경제적, 사회적 충격을 최소한 것입니다. 이슬람은 노예 해방을 하는 자에게 내려질 커다란 축복을 제시함으로써 단계적 노예 해방에 동력을 실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여성 노예를 해방시키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체 모든 부위를 불지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 (‘알-부카리’(no.6715)와 ‘무슬림’(no.1509)이 수집한 하디쓰). 엄청난 축복입니다. 무슬림은 원래 자신이 지은 죄값 만큼 불지옥에서 고통을 받은 후에나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노예를 해방한 무슬림은 그 어떤 불지옥의 고통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불지옥의 고통을 알고 천국의 기쁨을 아는 무슬림들이 노예 해방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꾸란 역시 -앞서 여러 꾸란 구절에서 다루었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노예 해방을 촉진하면서 그 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발적 해방을 통해 노예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고, 20세기 중반 이슬람의 종주국 사우디는 노예제 철폐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즉, 석유의 발견으로 국부가 급증하게 된 사우디는 노예제 철폐에 따른 보상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결국 1962년 사우디는 당시 존재했던 모든 노예를 시장가격으로 사들인 후 그들을 자유인으로 해방시키는 정책을 단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아랍 반도의 노예제는 1962년 완전 소멸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이슬람의 노예의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착취와 야만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예 소유주는 그가 먹는 음식과 동일한 음식으로 노예에게 음식을 줘야 하며 그가 입는 옷과 동일한 옷으로 노예에게 옷을 제공해야 하노라. 그는 노예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시켜서는 안 되며 만약 감당하기 힘든 일을 시킬 경우 그를 도와주어야 하노라.” (‘알-부카리’가 수집한 하디쓰, no.6050) 우리가 노예 하면 떠올리는 조선시대의 몸종과는 사뭇 다른 대우입니다. 조선시대의 몸종이 주인과 동일한 음식을 먹고 동일한 옷을 입는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슬림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노예에 관해 내려진 무함마드의 지침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 3대 칼리파(계승자)인 우쓰만입니다. 아랍 반도의 통치자였던 우쓰만은 어느 날 화가 난 나머지 노예의 귀를 잡아당겼고, 화가 가라앉은 후 우쓰만은 후회하며 노예에게 ‘네가 당한 그대로 나의 귀를 잡아당기라. 나는 심판의 날에 있을 하나님의 벌이 두렵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조선시대로 적용해보면, 세종대왕이 몸종에게 ‘내가 그대에게 한 그대로, 그대가 나의 귀를 잡아당기라’라고 말했다는 것인데,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정리하자면, 노예에 관련하여 13교리가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과는 무관하며, 이슬람은 점전직 노예 해방을 실현하면서도 노예에 대하여 놀라운 정도로 친절한 대우를 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노예와 아내는 때려도 된다 - 코란 4:34

꾸란 제 4장 34절의 번역입니다 :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이 구절에 노예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아내에 관한 언급이 있을 뿐이네요.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라’라는 번역의 아랍어 원문은 '와드리부훈나' (그리고 그녀들을 때리라)입니다. 이 구절의 뜻은 -다른 꾸란 구절도 그러하듯- 타프시르(꾸란주석)에 기초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슬람에서 가장 권위있는 타프시르로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 본인께서 직접 해주신 꾸란 해석이며 그 다음은 무함마드와 함께 계셨던 싸하바(교우들)의 꾸란 해석입니다. 첫번째로 무함마드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무함마드께서 마지막 고별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은 여성에 관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라...자국이 남을 정도로 여성을 세게 때려서는 안 되노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1218) 실제로 살아생전 무함마드께서는 아내를 단 한번도 때리신 적이 없습니다. 일부 무지한 무슬림이 아내를 구타하여 상해를 입히는 것은 그들의 무지에 비롯된 행동이지 이슬람의 가르침이 아닌 것이지요. 두번째로 싸하바의 해석을 살펴봅시다. 싸하바(교우분들) 중에서 꾸란 해설에 관해 가장 훌륭한 지식을 지녔다고 인정받는 분은 ‘이븐 압바스’입니다. 무함마드는 그가 꾸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한 바 있으며, 무함마드의 기도는 항상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븐 압바스는 이슬람 학자들 사이에 '꾸란 해설가'(투르자마누 알-꾸란)로 불립니다. 이븐 압바스는 '와드리부훈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시와크(칫솔용으로 쓰는 검지손가락만한 나뭇가지)나 그와 유사한 것으로 때리는 것이라" (<타프시르 앗-따바리>, vol.8, p.315) 참고로 시와크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결론은, 본 꾸란 구절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멍자국이 들 정도의 폭력행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는 폭력이라 인정되지 않을 정도의 약한 자극으로서 '심리적 효과'를 염두해 둔(남편이 그만큼 아내에게 화가 났다는) 그러한 때림인 것입니다. 

 4. 강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4명의 이슬람교 남성이 필요하다 - 코란 24:4

꾸란 제 24장 4절입니다. “순결한 여성들을 중상하는 자들이 네 명의 증인을 내세우지 못할 경우 그들에게 여든대의 가죽 형을 가하되 그들의 증언도 수락해서는 아니 되나니 이들은 사악한 죄인들이라” 해당 꾸란 구절은 간통에 관한 무고죄(誣告罪)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순결한 여성에 관해 한 남성이 ‘저 여성은 누군가와 간통을 범하였다’ 라고 주장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의 주장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세 명의 추가 증인을 확보하여 그들 모두가 해당 여성의 간통 사실을 증언할 때만이 그의 주장이 수락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즉 네 명의 증인(자신+나머지 3명)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해당 여성의 간통을 주장했던 남성은 무고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되어 80대의 태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또한 그는 증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며(‘그들의 증언도 수락해서는 아니 되나니’) 앞으로의 그 어떤 재판에서도 증인으로 참석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이슬람의 법률은 여성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함이며, 또한 충분한 증거 없이 고소를 남발하는 사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무고죄에 대한 이러한 엄격한 형벌은, 무고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로 그 형평성에 문제가 제기되곤 하는 한국 사회에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13교리는 강간에 관한 주장을 하면서도 강간이 아닌 간통을 다루고 있는 꾸란 구절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엉뚱한 근거 제시네요. 그렇다면, 강간에 관한 이슬람의 규정은 무엇일까요? 네, 꼼꼼히 읽으시는 분이 잘 기억하시는 것처럼, 강간범이 유부남일 경우 사형이며 미혼일 경우는 백대의 태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벌은 증인 등 결정적 증거의 확보를 전제로 합니다. 앙심을 품은 한 여성이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 저 남자가 나를 강간했다’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그녀의 주장을 확인 절차 없이 곧바로 받아들여줘야 할까요? 그렇지 않지요. 반드시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강간 범죄에 대해 증인 확보 절차가 없었다면, 멀쩡한 사람이 강간범의 누명을 뒤짚어쓰고 죽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을 것입니다. 맘에 안 드는 남성이 있으면 ‘저 사람이 나를 강간했다’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되고, 그는 곧바로 사형에 처해질 테니까요. 그렇기에 이슬람법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의 실정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에 대한 증거 확보를 필수 조건으로 두고 있고, 강간범에 대해서는 간통죄와 마찬가지로 4명의 증인을 두고 있습니다. 만약 강간범이 자백을 한다면 증인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는 사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강간이라는 범죄의 특성상 4명의 증인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으며, 판사는 이를 참조하여 정황 증거(여성의 비명 소리, 저항의 흔적, 체액 등)에 기초하여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한 후 처벌의 수위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비록 강간 현장을 직접 목격한 증인은 없었으나 여성 속옷에 남성의 DNA가 발견되었다면, 판사는 그에게 무기징역의 형벌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5.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로 안 바꾸면 그들을 죽이던지 세금을 내게 한다 - 코란 9:29

꾸란 제9장 29절입니다. “하나님과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 그들은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 이 꾸란 구절은 히즈라 9년(631년)에 계시되었으며(<타프시르 이븐 카씨르>, vol.4, p.132) , 초기 이슬람 학자 무자히드(722년 사망)에 따르면 이 구절은 무함마드와 그의 교우들에게 타북 전투(히즈라 9년(631년)에 시리아 근방의 타북 지역으로 출정한 전투)를 명령하는 구절입니다. 원래 ‘성서의 백성’이란 성서를 가진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뜻하지만, 이 구절이 의도하는 성서의 백성은 기독교인입니다 (<타프시르 이븐 아슈르>, vol.10, p.163). 여러 꾸란 구절이 그러하듯이 이 꾸란 구절 역시 계시 이유(‘아스바분 누줄’, أسباب النزول)가 있습니다. 계시 이유에 대한 이해 없이는 꾸란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이 계시된 히즈라 9년(631년)은 아랍 반도의 우상숭배자들 대부분이 유일신 사상인 이슬람을 받아들이던 시절입니다. 아랍 반도가 이렇게 이슬람으로 통일되자 당시의 강대국 로마는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기독교 국가 로마는 이슬람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무력으로 무슬림들을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로마는 당시 자신의 통치 하에 있던 시리아를 적극 활용하여 이슬람 전파를 저지하고 무슬림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께서는 ‘부쓰라’(시리아의 한 지역) 통치자에서 서신을 보냅니다. 이 서신은 무함마드의 교우 ‘알-하리쓰 이븐 아미르’가 외교 특사의 자격으로 전달할 예정이었지만, 시리아 지역의 또다른 통치자 ‘샤르히빌 이븐 아므르’는 알-하리쓰를 살해하였습니다.(<알-라히끄 알-마크툼>, p. 355)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자 보낸 사절단을 살해하는 것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양국간의 전쟁도 불사하는 커다란 범죄 행위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국가 로마는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을 한껏 드러내었고, 이러한 적대감은 개종 무슬림에 대한 살해로 이어졌습니다. ‘무안’(현 요르단 남부) 지역의 통치자였던 ‘파르와 알-주다미’는 무함마드가 가져온 하나님의 메시지를 믿어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기독교 왕국 로마는 개종 무슬림 파르와를 십자가에 못박아 살해합니다(<시라 이븐 히샴>, vol.2, p.591-592).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왕국 로마는 이슬람이 전파된 아랍 세계에 대해 언제든지 무력으로 그들을 침공할 의사와 능력이 있음을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태를 두고 아랍의 무슬림은 그냥 손놓고 있을까요? 로마가 침공해 오길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슬림 역시 무력 침공에 대비하고 전쟁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 꾸란 구절을 통해 기독교인들과 있을 수 있는 전쟁을 준비하라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전쟁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합니다. 번역에서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라는 말은, 그들이 인두세를 지불한다면 싸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만약 전쟁 발발 이전에 이슬람을 박해하던 시리아 지역이 무슬림들에게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무슬림은 그에 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리아 지역과 그를 지배하던 로마 왕국은 자신의 범법 행위에 대해 그 어떤 상응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무함마드와 그의 교우들은 타북 전투를 위해 출전하였습니다.

이 꾸란 구절은 13 교리가 주장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로 안 바꾸면 그들을 죽이던지 세금을 내게 한다’라는 메시지는 없습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 왕국 로마가 이슬람을 무력으로 저지하고 개종 무슬림을 살해하는 상황에서 무슬림들이 미래에 있을 전쟁을 준비해야 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슬람을 박해하던 그들이지만, 만약 그들이 인두세를 내면서 평화를 원할 때는 무슬림은 전쟁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상황으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13교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한국 무슬림이 그들을 죽이거나 그들로부터 세금을 받아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김은수 역) : “종교에 강요란 없으니 올바름이 그릇됨으로부터 구분되었음이라. 그러니 우상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실로 부러짐이 없는 단단한 손잡이를 움켜쥔 것이라.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며 아시는 분이라.” (꾸란 제 2장 256절) 종교에 강요란 없습니다. 이슬람이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진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슬람의 가르침입니다. 한국 무슬림은 이 소중한 꾸란 구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슬림이 비무슬람에게 무력을 행사한다거나 이슬람을 믿는다고 해서 비무슬림이 무슬림을 억압하는 그런 일은 꾸란의 가르침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반하는 행위입니다. 종교를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받는 일, 대한민국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밖아 박아 죽이던지 손과 발을 절단시켜라 - 코란 8:12, 47:4

 9.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은 목을 베어 죽여라 - 코란 8:12, 47:4

(동일한 꾸란 구절을 근거로 삼고 있어서 두 주장을 함께 다루기로 합니다)

꾸란 제 8장 12절입니다. “그대의 주님께서 천사들에게 말씀으로 영감하여 나는 너희와 함께 있으니 신앙인들에게 확신을 줄 것이며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때리고 또한 그들 각 손가락을 때리라” 해당 구절은 바드르 전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타프시르 이븐 카씨르>, vol.4, p.22) 바드르 전투는 무슬림들과 우상숭배자들간에 발생한 첫번째 전투로서,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은 우상숭배자들로부터 커다란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는 무슬림들의 굳건한 신앙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천사가 강림하여 무슬림들을 직접 도왔기 때문입니다. 번역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말씀하시어 ‘그들(전장에 있는 우상숭배자들)의 목을 때리고 또한 그들 각 손가락을 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천사들은 전장에 있는 우상숭배자들을 공격하였고, 무슬림들은 천사들의 도움으로 대첩을 거두게 됩니다. 적들의 목을 때리고 손가락을 때리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내린 명령이며, 무슬림들에게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또한 이 명령은 전시 상황에서의 명령이기에 평시 상황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구절입니다.

꾸란 제 47장 4절입니다.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를 만났을 때 그들의 목들을 때리라 너희가 완전히 그들을 제압했을 때 그들을 포로로 취하고 그후 은혜로써 석방을 하던지 아니면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그들을 보상금으로 속죄하여 주라 그렇게 하라 너희에게 명령이 있었노라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그들에게 응벌을 내렸을 것이라 그러나 그 분은 너희로 하여금 성전하도록 하였으니 이로 하여 너희를 다른 자들에 비유하여 시험코자 하심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길에서 살해된 자 있다면 그분은 그의 행위가 결코 손실되지 않게 하실 것이라” 이 꾸란 구절은 전쟁이 발발하여 두 군대가 전장에서 맞닥뜨렸을 경우 무슬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전쟁터에서 만난 두 무리는 상대방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됩니다. 이슬람은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도 무슬림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번역에서 ‘그들의 목들을 때리라’ 라는 말은, 전쟁터에서 검으로써 적을 공격하여 그들을 살해할 때는 다른 신체 부위가 아닌 목을 때림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라는 뜻입니다. 필수불가결하게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명을 끊어야 할 때(전쟁터에서의 대적, 동물의 도살 등) 이슬람은 그 고통을 최소화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최선을 의무로 하셨노라. 따라서 살해할 때도 최선을 다하고 도살할 때도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칼날을 잘 갈아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1955) 만약 목을 때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검으로써 팔이나 다리 등을 공격한다면, 이로 인해 적군은 죽지 않은 채 부상당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며 그가 느낄 고통은 증가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공격은 적군에 대한 고문과도 같은 것이며 이슬람은 고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세에서 누군가를 고문하는 자가 있다면 실로 하나님께서는 내세에서 그를 고문하실 것이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2613)

만약 전쟁이 종료되고 적군을 포로로 체포하였을 경우 이 꾸란 구절에 따르면 무슬림 군대의 지휘자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적군을 풀어주든지(번역에서 ‘은혜로써 석방을 하던지’) 아니면 일정 금액의 몸값을 받은 후 포로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번역에서 ‘그들을 보상금으로 속죄하여 주라’). 그리고 무슬림은 앞서 언급한 하디쓰에 의거하여 전쟁 포로를 고문할 수 없으며, 또한 무슬림은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꾸란에서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갈 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 불우한 자와 고아와 포로들에게 먹을 음식을 제공하며” (꾸란 제 76장 8절)

 위에서 언급된 꾸란 구절들 말고도, 다른 여러 꾸란 구절들은 전쟁 발생시 무슬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13교리 뿐만 아니라 이슬람을 왜곡하려는 사람들은 그러한 꾸란 구절들을 나열하면서, 이슬람은 폭력적인 종교이며 피를 좋아하는 종교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정당할까요? 전쟁 규범을 다루고 있는 종교는 이슬람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슬람의 모습을 통해 무슬림은 이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진정한 종교라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세기는 없을 만큼 전쟁은 자주 발발하며,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루는 진정한 하나님의 종교라면 전쟁에 관해서도 분명한 언급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총칼을 들고 돌진해오는 적군을 보고선 ‘어서 오세요, 저는 원수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수 없으며, 형과 누나를 살해하고 있는 적국에게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밀어야 하니, 이제는 저를 살해해 주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슬람은 현실을 바라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교라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꾸란은 전쟁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적과 대치해야 하는지, 휴전 협정은 응해야 하는 것인지, 전쟁 포로 발생시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인지 등의 전쟁 관련 규정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전쟁시의 전투 규정을 다루었다고 해서 꾸란이 폭력적인 성서이다 혹은 이슬람이 피를 사랑하는 종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은 현재 휴전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는 정규 군대를 양성하고 국군 사령부는 야전 교범(Field Manual)을 각 부대로 보내 각종 무기의 운용법 및 적의 인명 제거법 등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중무장한 군대를 양성하고 무력으로 적을 제압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나라 정부는 폭력적인 정부이고 전쟁을 사랑하는 정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지요. 필수불가결한 일입니다. 이슬람 역시 일어날 수 있는 전쟁 상황에 대해 믿는 자들에게 규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규정은 7세기에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신라시대 정도) 지정된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정합니다. 전쟁에 관심이 없는 농부나 종교인은 살해하지 말며, 무력으로 아군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여성을 살해하지 말며, 점령지에서는 필요한 만큼의 양식만을 얻어가되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축을 살해하거나 나무를 베지 말라 등등…

물론 전시 상황에서의 이러한 지침을 무시하며 민간인을 살해하는 무슬림들이 분명히 존재하고(특히 IS…나쁜 놈들), 전시 상황에서만 적용되어야 할 행동 규칙을 평시에도 적용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일부 무슬림 단체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진정한 무슬림들은 그들을 비판함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 무슬림의 잘못을 이유로 꾸란이나 이슬람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소수의 범죄 사실을 확대하여 나머지 다수조차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즉, 한국 정부는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을 대비하여 군인에게 총을 쥐어주고 사격 훈련을 시켰습니다. 인간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일은 오직 전시 때에만 허용되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군인은 총을 가지고 탈영하여 민간인을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일부 탈영병의 범법 행위로 국군 전체를 비난하거나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시겠습니까? 비판의 화살은 오직 규범을 어긴 탈영병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꾸란에서 제시된 전시 상황의 규범을 임의로 해석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테러를 저지르는 무슬림이 있다면, 우리는 이슬람의 규범을 어긴 그 무슬림을 비판해야 하며, 그의 행동을 근거로 이슬람 전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7.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는다 - 코란 9:111

꾸란 제 9장 111절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 가운데서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재산을 사시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하고 투쟁하며 또 순교하리니 그것은 구약과 신약과 꾸란에 약속된 것이라 하나님보다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 누구이뇨 너희가 하나님과 성약한 것에 기뻐하라 그것이 영광된 승리라” 이 구절은, 전쟁 발발시 자신의 목숨을 마다 않고 전쟁에 참여하여 전투를 치루는 무슬림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희생한 생명과 재산에 관하여 천국으로써 그들을 충분히 보상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북한과의 전쟁이 발생하였을 때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한국 군인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금전적 대가 제공과 훈장 수여 등 그의 명예를 치켜 세우기 위한 일련의 보상을 실시할 것입니다. 이러한 보상 체계는 적국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는 훌륭한 시스템입니다. 이슬람 역시 전쟁 상황시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마다 않고 용감하게 싸운 자를 현세와 내세에서 훌륭히 보상합니다. 이러한 보상 시스템으로써 이슬람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적들로부터 신앙인들을 안전히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꾸란 구절에는 13교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는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8. 이슬람교를 떠나는 사람은 죽여라 - 코란 2:217, 4:89

꾸란 제 2장 217절입니다. “그들은 성스러운 달 동안에 살생에 관하여 그대에게 물을지니 그 기간에 살생은 죄악이라 하되 하나님의 길을 방해하고 하나님과 하람사원에 가까이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것과 그곳으로부터 그의 주민들을 추방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며 교사하고 박해하는 것은 살생보다 더 나쁜 죄악이라 그들은 너희가 너희의 종교를 배반할 때까지 너희들과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배반자가 되고 믿음을 갖지 않고 죽는다면 그들의 일은 현세와 내세에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불지옥의 거주자가 되어 그곳에서 영원히 기거할 것이라.” ‘이슬람교를 떠나는 사람을 죽여라’ 는 13교리가 주장하는 내용은 아마도 다음 번역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너희의 종교를 배반할 때까지 너희들과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배반자가 되고 믿음을 갖지 않고 죽는다면 그들의 일은 현세와 내세에서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불지옥의 거주자가 되어 그곳에서 영원히 기거할 것이라.”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은 무슬림들이 하나님 한분만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고향인 메카로부터 그들을 추방하고 그들에게 재산 몰수와 살해 등의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일부 신앙이 약한 무슬림들은 그들의 지속적인 박해에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슬람을 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텐데…내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안전하고 편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길, 우상숭배자들은 무슬림들 너희가 종교를 버릴 때까지 박해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만약 너희가 이슬람을 버린다면 너희들의 일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며 불신자가 되어 불지옥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박해가 두려워 이슬람을 버리며 불신할 경우 내세에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꾸란 구절의 주된 내용이며, 13교리가 주장하는 ‘이슬람교를 떠나는 사람은 죽여라’는 메시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꾸란 제 4장 89절입니다. “그들이 그랬듯이 너희도 불신자가 되기를 원하며 너희가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거늘 너희는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떠날 때까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 이 꾸란 구절은 위선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슬람에서의 위선자(아랍어로 무나피끄)란 ‘외면으로 믿음을 드러내면서도 내면으로는 불신하는 자’를 뜻합니다. 자신의 불신을 숨기면서도 무슬림인 척 하는 사람들이 위선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꾸란 구절이 말하는 ‘그들’이란 위선자들을 뜻합니다. 이 꾸란 구절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시 이유’(아스바분 누줄)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무함마드께서 메카에서 최초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부터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은 이슬람을 극렬히 반대하며 믿는 자들을 억압하고 박해하며 살해를 자행하였습니다. 그렇게 13년 동안 메카에서 고난의 시기를 보낸 후 하나님의 사도와 무슬림들은 메디나로 이주(히즈라)를 단행하게 됩니다. 즉, 종교를 지키기 위해 무슬림들은 불신의 마을(메카)에서 신앙의 마을(메디나)로 이주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입으로는 ‘믿습니다’라고 얘기하면서도 메카에 남아 불신자들과 함께 있었던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메디나로의 이주를 거부하며(꾸란 번역에서는 ‘하나님을 위해 떠날 때까지’) 믿는 자들과 무력 대치 상황에 있는 메카의 불신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메카에 남아 있는 그들이 진정한 믿는 자들이 아님을 이 계시를 통해 알려주신 것이며 이것이 해당 꾸란 구절의 계시 이유입니다.(타프시르 앗-따바리, vol.8, p.10-11 참조)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과 대치 중에 있는 우상숭배자들을 돕는 위선자들은 포로가 되거나 사형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 포인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이러한 판결은,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메디나로 이주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었던 것이지, 이러한 판결을 실제로 적용하라는 ‘집행의 명령’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중한 꾸란의 메시지로 인해 메카에 남아있던 사람들 모두는 메디나로 이주하였고, 따라서 메디나로 이주하지 않아 포로가 되거나 사형 판결을 받은 경우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꾸란이 그들을 포로로 삼거나 사형에 처하라고 그 형의 ‘집행을 명령’한 것이었다면,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던 당시 교우들은 그러한 명령을 즉각 행동으로 옮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무함마드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히 기록한 선지자 전기(傳記, biography) 서적들은 메디나로 이주하지 않은 메카 위선자들에 관한 살해 기록 그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잘 알려진 역사적 팩트는, 위선자들은 무슬림들에게 많은 해악을 끼쳤음에도(‘우후드’ 전투 중에 병력의 삼분의 일을 철수시킨 사건 등) 무슬림들은 메디나로 이주 후에도 그들에게 인내하였을 뿐 그들을 살해한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러한 판결(그들을 포로로 삼거나 사형에 처해야 한다)이 현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메카 우상 숭배자들은 믿는다는 이유로 무슬림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폭행하며 심지어는 살해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에 무슬림들은 메디나로 피난을 갑니다. 그런데, 피난을 가지 않고 메카에 남아서 적들을 돕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판결이 포로나 사형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공산주의가 지배하던 북한에 민주주의가 들어왔다고 해봅시다. 민주주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지지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재산을 몰수하고 단두대로 그들의 목을 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박해를 피해 정치의 자유가 있는 남한으로 이주합니다. 남한으로 피난한 그들은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합니다. 공산주의 국가 북한은 이제 민주주의 국가 남한의 명백한 적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믿는다면서도 남한으로의 이주를 거부하며 북한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한의 동향을 상세히 전달하며 북한의 탈북자 억압 및 남한에 대한 무력 통일 준비를 돕고 있습니다. 남한 입장에서 그들은 스파이며,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利敵)의 무리들입니다. 이들에게 국가 반역죄나 내란 음모죄 명목으로 징역형 혹은 사형에 처하는 법률을 제정한다면, 이러한 남한의 법률은 너무 과한 것일까요? 공동체의 안녕과 정치 체제의 안정을 위해 반역죄나 내란죄를 범한 자에게 사형을 판결하는 국가는 꽤 있습니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네요.  미국 연방 헌법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꾀하거나 적과 유착해 미국 내외에서 도움을 주는 사는 사형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1만달러 이상의 벌금형에 처한다’ 프랑스와 영국 역시 반역죄에 대한 최고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두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꾸란 제4장 89절은, 위선자들이 펼치는 이적 행위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13교리가 주장하는 ‘이슬람을 떠나는 자는 죽여도 된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9.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은 목을 베어 죽여라 - 코란 8:12, 47:4

6번 주장 참조.

 10. 알라신을 위해 죽이고 순교하라 - 코란 9:5

꾸란 제 9장 5절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의무 희사금을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이 꾸란 구절 역시 다른 구절들처럼 ‘계시 이유’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구절은 메카로의 무혈 입성(서력 630년) 이후에 내려졌습니다. 메카가 어떤 도시인지 약간의 부연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메카는 하나님께서 신성하고 축복받은 곳으로 두신 도시이며 하나님의 사도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유일신 사상을 위해 ‘카으바’(메카의 하람 성원에 있는 정육면체 건물)의 토대를 건축한 곳입니다(꾸란 제 3장 96절과 제 2장 127절 참조). 그러나 아랍의 우상숭배자는 메카를 우상 숭배의 장소로 변질시켰고(당시 카으바 내부에는 약 360개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이슬람은 메카가 이전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도시로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하나님의 계시가 시작(서력 610년)된 후 약 20년 만에 실현되었습니다. 즉, 박해를 피해 메카를 떠나 메디나에 머물던 무슬림들은 서력 630년에 다시 메카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들은 그 어떤 전투도 없이, 그야말로 메카로의 ‘무혈입성’을 이루게 됩니다. 그 후 메카에 있던 대부분의 우상숭배자는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이슬람을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무슬림들과 평화조약을 맺어 서로간의 물리적 충돌이 없어야 함에 합의하였습니다. 다만, 이러한 평화 조약을 맺기를 거부하며 무슬림들에 대해 무력 대치를 지속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꾸란 제 9장은 이러한 종류의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판결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이들에게 그들의 불신을 뉘우치고 하나님 한분만을 믿으라 명령하셨습니다(꾸란 제 9장 3절). 그리고 그들에게 4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셨습니다(꾸란 제 9장 2절). 즉, 그 4개월 동안 유일신 사상의 도시인 메카에서 이슬람을 받아들여 무슬림으로서 살아가든지, 아니면 우상숭배를 지속하길 원할 경우에는 메카를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지요. 유일신 사상의 도시에서 우상 숭배자가 살기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생이 금지된 4개월(번역에서는 ‘금지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메카를 떠나지 않고, 평화 조약을 맺지 않거나 아니면 조약을 맺은 이후에도 조약을 위반 행위를 지속하면서 이슬람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자들(꾸란 제 9장 12절)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로 체포하거나 살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꾸란 제 9장 5절).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 ‘메카를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감옥형이나 처형의 판결을 내리는 것은 너무 과한 처벌이 아닌가?’ 무슬림이기 이전에 한국인으로서, 그러한 판결은 절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반도는 한국인의 땅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제국주의 를 들이대며 무력으로 한반도를 침략하여 한국인들을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35년의 시간이 지난 후 일본은 패망하였고, 한국인은 한반도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뀐, 아니 원래 주인의 품으로 되돌아온 한반도에서 이제 일본인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본국으로 떠나지만 일부 일제 잔존 세력들은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 총칼로 한국인을 위협합니다. “35년 동안 실질적으로 지배한 땅인데, 우리 보고 갑자기 뜨라고? 흥, 여긴 우리 땅이다데스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당연히 제거의 대상입니다. 이에 한국 정부가 만약 “4개월 이내에 한국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너희 제국주의 일본인을 체포하거나 사형에 처하도록 하겠다”라고 선포한다면, 이것이 과한 조치일까요? 무슬림들은 20년만에 되찾은 메카 땅에 그 어떤 우상숭배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고, 한국인들은 35년만에 되찾은 한반도 땅에 그 어떤 일본인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되찾은 우리 땅에서 기존의 폭압 세력은 자리를 비워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무력 조치를 취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예를 든 한반도의 경우, 일본인들은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한국땅에 남아 있을 방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는 불가능했고, 설령 한국인으로 귀화한다고 해도 ‘이제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그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메카의 경우는 다릅니다. 비록 우상숭배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불신을 뉘우치고 유일신 사상을 받아들일 경우, 그는 계속해서 메카에 머물며 자신의 삶의 터전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의무 희사금을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꾸란 제 9장 5절) 또한 메카를 떠나길 거부하는 자일지라도 만약 그가 보호를 요청할 경우 그는 안전한 장소로 인도됩니다 : “불신자들 가운데 어느 누가 그대에게 보호를 구한다면 그를 보호할 것이요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할 것이며 그후 그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라” (꾸란 제 9장 6절) 제9장 5절의 명령이 메카에 남아 무력 대치를 지속하는 자들에만 한정됨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껏 꾸란 제 9장 5절과 그 전후 구절의 계시 배경과 그 의미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드린 설명을 잘 이해하신 독자분께서는 13교리의 주장(“알라신을 위해 죽이고 순교하라”)이 얼마나 맥락과는 상관없는 생뚱맞은 내용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해당 꾸란 구절의 내용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이 같은 주장에 너무 기가 차신 독자분들은 13교리 저자에게 이렇게 말하셔도 좋겠습니다. “말이여 방구여?”

 11.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을 위협하라 - 코란 8:12, 8:60

꾸란 제 8장 12절의 번역입니다 : “그대의 주님께서 천사들에게 말씀으로 영감하여 나는 너희와 함께 있으니 신앙인들에게 확신을 줄 것이며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때리고 또한 그들 각 손가락을 때리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바드르’ 전투에 강림한 천사들에게 명령한 내용임을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p.19-20 참조). 꾸란 제 8장 60절의 번역입니다 : “군대와 말로써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 대항할 준비를 하라 하셨으니 그것으로 하나님의 적과 너희들의 적들과 그들 외의 다른 위선자들을 두렵게 하라 너희는 그들을 알지 못하나 하나님은 그들을 아심이요 너희가 하나님을 위해 바친 하찮은 것이라도 그릇됨 없이 정당한 보상을 받노라” 적들과의 무력 대치 중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시 무슬림들에게 군대와 말(馬)로써 군사력을 키우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현대인의 언어로 풀어쓰자면, 육해공군 숫자를 증강시키고 탱크와 잠수함 및 전투기 등을 넉넉히 확보하라는 명령입니다. 충분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적이 섣불리 얕잡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역시, 있을 수 있는 북한의 무력 침략에 대비하여 GDP의 2%가 넘는 엄청난 예산(20조가 넘는 돈입니다)을 매년 군비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군사력을 확보하여 적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지극한 당연한 처사입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카의 우상숭배자들은 아랍 부족들을 소집하여 혹은 타종교 세력들과 연합하여 종종 전쟁을 일으켜 왔고, 이를 잘 알고 있는 메디나의 무슬림들은 이에 대비하여 군사력을 갖추어 왔습니다. 이렇게 강한 군사력을 갖추어 적의 무력 침공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마치 대한민국이 꾸준히 국방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두고서 그 어떤 한국인도 그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12.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의 것들을 훔쳐라 - 코란 8

‘코란 8’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절도 행위는 다른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서 범죄로 인식됩니다. 절도 행위를 권장하거나 명령하는 종교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13. 이슬람을 강화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라 - 코란 3:26, 3:54, 9:3, 16:106, 40:28

꾸란 제 3장 26절입니다 : “일러가로되 권능의 왕이신 하나님이여 당신은 당신의 뜻대로 권능을 주시기도 하고 권능을 빼앗기도 하시며 또 영광과 천함을 주시나니 당신의 손안에 모든 영광이 있나이다 진실로 당신은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시도다” 거짓말과 관련한 내용은 없습니다. 꾸란 제 3장 54절입니다 : “그들이 음모를 하나 하나님 은 이에 대한 방책을 세우셨으니 하나님은 가장 훌륭한 계획자이시라”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예수를 살해하려 음모를 꾸몄으나 하나님께서 이에 대한 방책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꾸란 제 9장 3절입니다 : “하나님과 그분의 선지자로부터 백성에게 발표가 있었으니 대순례날이었느니라 실로 하나님 은 불신자들에 대한 책임이 없으며 그분의 선지자도 마찬가지라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것이 너희에게 복이 되리니 너희가 거역한다면 너희가 하나님을 좌절케 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며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벌만이 있을 것 이라” 거짓말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아, 도대체 관련 없는 꾸란 내용을 갖다 붙이기만 하면 그게 통하는 줄 아는지, 조금 답답해지려 합니다. 오히려, ‘기독교를 강화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라’ 라는 성경 구절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심히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입니다. 다행히(?) 이후에 나오는 두 개의 꾸란 구절은 조금이나마 주제와 관련이 있네요. 꾸란 제 16장 106절입니다 : “그의 마음은 믿음으로 가득하나 강요된 것은 제외될 수 있으되 믿음을 가진 후 하나님을 불신하여 그의 마음이 불신으로 가슴을 펴는자 그들 위에 하나님의 노여움이 있을 것이요 큰 벌이 있으리라” 이 계시가 내려진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한 교우)암마르 이븐 야시르)가 메카 우상숭배자들로부터 고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네가 예언자라고 믿는 무함마드를 불신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를 죽이겠다’ 이 교우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원하는 요구 사항을 들어주었고, 풀려난 이후 이 교우는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믿는 자가(번역에서는 ‘그의 마음은 믿음으로 가득하나’) 강요된 상황에서 불신 행위(선지자를 욕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번역에서는 ‘강요된 것은 제외될 수 있으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타프시르 이븐 카씨르, vol.4, p.605 참조) 이처럼 생명에 위협이 가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목에 칼이 들어와 죽을 판인데 거짓말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두고 ‘이슬람을 강화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라’고 주장하는 13교리... 13교리 저자는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묻고 싶군요. 다음 꾸란 구절(제16장 10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라오 가족 중에 믿음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그의 믿음을 숨기고, 나의 주님은 하나님이시라 말한 것을 이유로 살해하려 하느뇨 라고 말하였더라 실로 모세는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예증을 가지고 당신께 왔도다 만일 그가 거짓하는 자라면 그의 거짓이 그를 해할 것이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그가 너희에게 경고한 재앙이 너희 위에 있을 것이라 실로 하나님은 넘어선 자와 거짓하는 자를 인도하시지 않노라” 모세가 하나님의 징표들을 가지고 와 파라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하였고, 파라오는 이를 거부하며 무력으로 대항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중 태어나는 남자 아기는 모두 살해하고, 성인 남성들에게는 고문을 가하는 등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혹한 학대를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파라오의 궁궐에서 일하던 사람 중의 한 명은 모세가 가져온 하나님의 메시지가 진실임을 믿고, 모세가 하나님의 사도임을 확신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 앞에서는 그의 믿음을 숨겼습니다. ‘나는 모세를 믿는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목숨이 날아갈 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비난받지 않습니다.

이슬람은 정직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꾸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 “믿는 자들이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정직한 자들과 함께 하라” (꾸란 제 9장 119절) 또한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대들은 정직해야 하노라. 왜냐하면 정직을 통해 선으로 인도되며 선을 통해 천국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라. 정직한 말을 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려 꾸준히 노력한다면 결국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로 기록될 것이라." ('무슬림'이 수집한 하디쓰, no.2607) 꾸란과 하디쓰(무함마드 언행록)이 이렇게 정직을 강조하는데도 13교리는 ‘이슬람을 강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왜곡은 쉽고 해명은 길 수밖에 없습니다. 짜집기로 만들어진 가짜 뉴스가 성행하고, 팩트체크는 여전히 버거운 작업입니다. 일부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정황을 악용하여 오늘도 열심히 13교리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궤변의 논리를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에 그대로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아래와 같은 괴물 파일이 탄생합니다.

저는, 한국 종교계의 맏형이신 기독교에게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비방은 이제 그만해주시고, 선의의 경쟁을 펼칩시다. 페어 플레이를 제안합니다. 사람들에게 교리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선택은 그들에게 맡기되, 비방하거나 왜곡하지는 맙시다. 선행으로써 서로 경합하고, 누가 더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는가로 선의의 경쟁을 펼칩시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해주셨던 것처럼, 사랑과 평화로 상처받은 한국인들을 보듬어주시고, 무슬림들은 공정과 관용을 실천함으로써 좀 더 정의롭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합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평화롭게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희망해봅니다…

끝으로, 하나님 이외에는 경배 받을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마지막 사도임을 증언하며 저는 이만 마치고자 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1980년생. 2003년 이슬람 입교. 2005년 서울대 졸업. 2007년 ‘메디나 이슬람 대학교’에서 샤리아(이슬람법) 및 아랍어 공부 시작~현재. 블로그 주소 : blog.naver.com/eunsuya

[2] 추가 언급이 없는 한 이 자료에 언급된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은 최영길 교수님의 것입니다. 다만 ‘김은수 역’이라고 언급된 것은 카람 김은수의 번역입니다.